키케로의 의무론, 키케로가 강제 퇴임 당하고 시골을 돌면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 책은 여타의 철학책과는 달리 어투와 형식이 부드러운 느낌이다. 자상한 할아버지가 조언을 해주는 느낌이랄까. 내용은 가볍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키케로의 의무론은 크게 3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각각 '1. 도덕적 선에 대하여' '2. 유익함에 대하여' '3. 도덕적 선과 유익함의 상충'이다. 도덕적 선과 유익함에 대한 1과 2 파트를 읽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감동도 받으며 읽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마지막 파트인 '도덕적 선과 유익함이 상충할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부분에서는 마냥 수용적으로만 읽을 수는 없었다. 필자가 전체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일까. 3파트의 내용은 나중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 순서대로 내용을 짚어보자.
제 1권에서는 도덕적 선에 대하여 다룬다. 그렇다면 도덕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세한 정의는 철학자들마다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키케로가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고 본다. 키케로의 저서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그러한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리하여 키케로는 도덕적 선을 공동체의 이익, 공익을 통하여 가치판단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도덕적 선, 정확히는 모든 종류의 덕으로부터 어떤 의무들이 나오는가? 키케로는 크게 4가지를 든다. "지혜, 정의, 용기, 인내"가 그것이다. 그는 또한 4가지 중 무엇을 더 높이 평가할지 또한 중시했다. 그는 이 덕목들의 순서를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이성적인 원리에 따라 배치했다.
지혜 → 올바른 판단과 사물의 본질을 아는 것이 먼저이다.
정의 → 지혜를 바탕으로 공정한 행동을 해야 한다.
용기 →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내 → 마지막으로, 용기를 포함한 모든 덕목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즉, 지혜가 선행되어야 정의를 실천할 수 있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며, 이를 지속하기 위해 인내가 필요하다는 논리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책의 묘미는 이러한 내용보다도 저자가 각 덕목마다 짚어주는 로마나 인근 국가의 이야기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기에 흥미가 생겼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제 2권에서는 유익함에 대하여 다룬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착하게 살자' 키케로 식으로 표현하자면 '의무들을 지키며 살자'이다. 누구누구라고 지정해 말하지는 않겠지만, 현 시대에서 높이 올라간 이들 중에도 과거의 잘못에 발목 잡혀 추락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이 말하는 것을 듣진 않더라도 착하게 사는 게 유익할 것이다. 아무튼, 책을 요약해 보자.
키케로는 유익함의 본질을 말하며 인간이 추구하는 유익함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신체적, 물질적, 사회적, 정신적 유익 말이다. 그 중에서는 사회적 정신적 유익을 높게 치며,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그렇듯이 말초적인 쾌락은 좋게 보지 않는다.
또한 그는 정치와 유익함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키케로는 국가의 지도자들이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전쟁과 정복 같은 단기적인 유익함 보다 장기적인 국가의 안정과 번영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심심하다 싶을 때마다 카이사르 욕이 나온다, 키케로는 정말 공화정과 로마를 사랑했나보다.)
그 이후로 부와 권력, 명성과 유익함, 철학과 실천 등등이 나오는데 공동체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다 일관되어 있으니 상세히는 적지 않겠다.
제 3권에서는 도덕적 선과 유익함이 상충된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하여 다룬다. 이때 놀랍게도, 키케로는 도덕적 선과 유익함이 상충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그것이 상충한다고 보인다면 눈앞의 이익이 마치 더 유리해 ‘보이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반지의 제왕에도 영감을 준 '기게스의 반지' 설화를 통하여 질문다. “절대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해서 이익을 얻을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정말 유익한가?” 키케로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미 도덕적 선과 유익함이 일치한다고 전제되어 있기에 설령 들키지 않는다 해도, 도덕적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눈앞의 이익에 속지말고 유익함과 도덕적 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도록 하자.
키케로는 이야기의 끝에서 레굴루스 이야기를 든다. 난 개인적으로 조금 불쾌했기에 길게 적도록 하겠다. 키케로는 레굴루스의 이야기를 통해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유익이 개인의 유익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레굴루스는 포에니 전쟁 중 카르타고에 포로로 잡힌 로마의 장군이었다. 카르타고인들은 그를 로마로 보내 평화 협상을 하도록 허락했지만, 협상이 실패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맹세를 요구했다. 이는 그에게 자유와 생명을 보장받을 기회가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레굴루스는 로마에 도착한 후 뜻밖의 선택을 한다. 그는 원로원에 카르타고의 젊고 유능한 포로를 자신과 교환하지 말도록 설득한다. 그것이 로마의 장기적인 이익에 더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만약 그가 자신의 생명을 위해 협상을 지지했다면, 그는 자유를 얻고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맹세를 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다시 카르타고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잔인한 고문 끝에 처형되었고, 키케로는 이런 모습을 높게 평가한다.
글쎄다, 개인적으로는 공감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부분 빼고는 전부 좋은 조언이었고 생각해 볼만한 질문거리였다.
키케로의 의무론은 여기까지, 유명한 고전이어서 너무 벽돌 같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가벼워서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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